국제
프랑스, '쉬는 날'까지 팔아 빚 갚나?

바이루 총리는 현재 프랑스의 재정 상황이 매우 심각하며, "지금 조치하지 않으면 그리스처럼 재정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강도 높은 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공공부문 구조조정, 퇴직 공무원 충원 비율을 3분의 1로 제한하여 인건비를 절감하는 방안, 비효율적인 국가기관 정비, 처방약 보조금 축소 등 사회보장 지출 조정, 그리고 의료비 지출 구조 개편을 포함한 광범위한 긴축 조치를 제시했다. 또한, 국방 분야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예산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여 지출을 억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이 모든 조치는 생산성 확대를 목표로 하며, 그 핵심에 연중 총 11일에 달하는 법정 공휴일 중 이틀을 폐지하는 안이 포함된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발표에 야권은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극우 국민연합(RN) 소속 장 필리프 탕기 의원은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에 출연하여 "마크롱 정권이 7년의 집권 동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그는 공휴일이 단순히 '선물'이나 '공공 지출'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조직 체계"이며, 국가의 예산 절감과는 무관하다고 일갈하며 정부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5월8일 종전 기념일의 공휴일 제외는 '역사적 망각'이라는 비판과 함께 야권의 반발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5월8일은 나치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며 유럽 내 2차 세계대전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역사적인 날로, 프랑스에서는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유의 가치를 되새기는 중요한 국가적 기념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소속 토마 포르트 의원은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이번 제안을 "완전한 스캔들"이라고 맹비난했으며, 녹색당의 마린 통들리에 대표 역시 엑스에 "나치즘에 대한 승리 기념일을 더 이상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데 이 제안을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반문하며 정부의 역사 인식을 문제 삼았다. 강성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소피 비네 사무총장은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극우 세력이 권력의 문턱에 선 상황에서 총리가 나치에 맞서 승리한 날을 폐지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노동계의 전면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이러한 거센 비판에 대해 정부는 역사적 선례를 들어 반박했다. 뱅자맹 아다드 유럽 담당 장관은 "드골 장군이 과거 5월8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한 바 있다"고 언급하며 이번 제안이 전례 없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실제로 프랑스는 1946년부터 5월8일을 기념해왔지만, 공식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였다. 1959년 드골 대통령 시절에는 경제적 이유로 5월8일이 공휴일에서 폐지되었고, 1975년에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기념식 자체를 없애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다시 공휴일로 복원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정부는 야권의 거센 반발과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자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에리크 롱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정당들과 논의 과정에서 계획을 개선할 것"이라고 밝히며, 공휴일 폐지 제안을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 기조와 관련하여 모든 정당과 폭넓게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의회의 불신임을 피하고 예산안 통과를 위해 그간 바이루 정부에 협력해 온 사회당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공휴일 폐지 제안은 프랑스의 심각한 재정 상황을 반영하는 긴축 성격의 예산 구상이다. 현재 프랑스의 국가 부채는 GDP 대비 114%에 달하며, 이는 유로존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다. 또한, 재정적자도 지난해 기준 GDP 대비 5.8%에 달해 유럽연합(EU)이 권고하는 기준치인 3%를 한참 초과하고 있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내년까지 적자를 4.6% 수준으로 낮추고, 2029년까지는 3% 이하로 줄인다는 야심 찬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공휴일 폐지를 통한 세수 확보는 이러한 재정 건전성 목표 달성을 위한 핵심적인 수단 중 하나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단순히 경제적 논리를 넘어 역사적 의미, 사회적 가치, 그리고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만큼, 향후 프랑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 간의 치열한 논쟁과 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