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관세 끝?' 방심은 금물..트럼프, ‘플랜B’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관세 정책이 연방 법원의 제동에 부딪히며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미 연방국제통상법원은 현지시간으로 28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일방적으로 시행한 상호관세 조치를 무효라고 판단하며 즉각적인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번 판결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관세 전략에 큰 타격이 불가피해졌으며, 경제 정책 전반의 불확실성도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방식에 있다. 해당 법은 국가 비상사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외국과의 경제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지만, 법원은 이 권한이 무제한적이지 않으며, 특히 무역 관세 부과는 헌법상 의회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판결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적자를 근거로 미국 경제를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IEEPA를 적용한 점에 대해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무역적자는 수십 년간 지속된 구조적인 문제일 뿐, 갑작스럽거나 일시적인 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Make America Wealthy Again)’라는 이름의 행사에서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 발표하고,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미국은 4월 5일부터 모든 무역국을 대상으로 기본 10%의 관세를 부과했고, 4월 9일부터는 한국을 포함한 60여 개국에 최대 50%의 개별 상호관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다만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는 90일간 유예를 선언하며 국가별 협상을 병행했다.

 

 

 

법원의 판결 이후 백악관은 즉각 항소했으며, 최종적인 판단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가 아닌 품목별 관세 확대 전략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부품 등 기존 품목 외에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으로 관세 부과 대상이 넓어질 수 있다. 또한, 국가 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 상대국의 불공정 행위에 대응하는 무역법 301조(슈퍼 301조)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법 조항은 사전 조사 및 절차가 필요해 최종 결정까지 최대 9개월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와 협력해 입법을 통한 상호관세 부과를 시도할 수도 있다. 현재 미 의회는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법안 통과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와 내부 갈등으로 인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 외적인 압박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한국을 상대로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을 무역 협상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과 사법부 간의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집권 2기 들어 불법 이민자 추방, 유학생 비자 제한, 출생 시민권 박탈, 성전환자 군 복무 금지 등 다양한 정책이 법원으로부터 제동을 받은 바 있다. 이에 그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으며, 이번 판결 이후에도 백악관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부비서실장은 판결 직후 자신의 SNS에 “사법 쿠데타가 통제 불능 상태”라고 강도 높은 비판을 게시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하나의 통상정책 좌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권한 행사 방식과 미국 헌정 질서의 경계를 둘러싼 중대한 법적·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의 정책을 강행할 수단을 모색하고 있지만, 법원과의 충돌, 의회와의 조율이라는 두 개의 장벽을 동시에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